2010년 6월 13일 울릉도 여행 둘째날
도동을 출발해
사동 -통구미-남양 - 태하 - 현포 - 예림원까지 왔다 .
예림원은
외도를 연상하면 금방 이해하시겠죠 ?
외도 보다 규모도 작고
노인봉과 추산 송곳봉 사이 자리 잡은 예림원은 문자조각 ,
수석 ,분재 ,야생화 등을 전시하는 자그마한 농원입니다
이제 시작하는 단계라 볼거리는 적지만
울릉도 규모에 맞게 아담하고 주인의 정성이 깃드린 곳이라
가볼만하죠 .
들어 가실땐
입구에서 땡!땡! 땡!
종 치는걸 잊지 마세요 ~~
山中何所有
嶺上多白雲
只可自怡悅
不堪持贈君
산중에 무엇이 있는가
산마루에 떠도는 구름
다만 스스로 즐길 뿐
그대에게 보내줄 수 없네
옛날 깊은 산 속에 숨어 사는 한 은자에게,
그 산중에 무엇이 있기에 거기 머물러 세상에 나오지 않는가라고 친지가 물었다.
은자는 그 친지에게 답하기를,
자신의 거처에는 이렇다 할 아무것도 없지만 산마루에 떠도는 무심한 구름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이런 경지는 혼자서나 조촐히 즐길 뿐 그대에게는 보내줄 수 없노라고 말한다.
이 시를 통해 우리는 그 은자의 욕심을 떠난 담담하고 소탈한 삶을 엿볼 수 잇다.
구름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 가지더 보태겟다.
고려 말 태고 보우 스님의 문집에 구름 덮인 산을 노래한 '운산음雲山吟'이 있는데
그 가운데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산 위에 흰구름은 희고
산 속에 시냇물은 흘러간다
이 가운데서 내가 살고자 했더니
흰구름이 나를 위해 산모퉁이를 열어 놓았네
횐구름 속에 누워 있으니
청산이 나를 보고 웃으면서
'걱정근심 다 부려 놓았구려' 하네
나도 웃으면서 대답하기를
산이여, 그대는 내가 온 연유를 아는가
내 평생 잠이 모자라
이 물과 바위로 잠자리 삼았노라
청산은 나를 보고 웃으면서 말하네
왜 빨리 돌아와 내 벗 되지 않았는가
그대 푸른 산 사랑하거든
덩굴풀 속에서 편히 쉬게나
옛사람들은 그 무엇에도 쫓기지 않고 이런 운치와 풍류를 지니고 넉넉하게 살 줄을 알았다.
자신이 자연의 한 부분임을 알고서 그 품에 안겨 동화될 수 있엇다.
세상살이에 닳아지고 지치게 되면 산에 들어가 숲속에서 쉬면서 자기 자신의 자취를 되돌아보곤 했다.
어느새 묵은 해가 기울고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해가 바뀌면, 나이 어린 사람에게는 한 해가 보태지고, 나이 많은 사람에게는 한 해가 줄어든다.
당신은 지금 어느 쪽인가. 보태지는 쪽인가, 줄어든는 쪽인가.
그러다 보태지고 줄어드는 일에 상관이 없는 사람이 있다.
그는 육신의 나이에 집착하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순간순간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최대한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세월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그 자신답게 살아간다.
삶은 끝없는 변화이다. 그리고 날마다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다.
우리 자신과 세계가,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상황이 수시로 변해가면서 새롭게 전개되고 있다.
우리가 한숨 한숨 들이쉬고 내쉬는 생명의 숨결도 흐르는 강물처럼 낡은 것과 새것이 잇따르고 잇다.
이게 바로 살아 있는 생명의 흐름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우리가 제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목표도 지향도 없이 어디론지 끝없이 표류하고 만다.
덧없는 세월 속에서 의미없는 삶으로 막을 내린다면, 우리 인간사가 너무도 허무하지 않겠는가.
우리 시대에 이르러 인류가 쌓아 올린 문명은 그 중심을 잃은 채 휘청거리고 있다.
당당한 인간으로서 삶의 중심을 잃어버린 채 인간들 스스로가 그 설 자리를 무너뜨리고 있는 현실이다.
모든 존재와 현상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연결의 고리가 튼튼하면 조화와 균형을 이룬다.
개인이나 사회 또는 국가를 물을 것 없이 조화와 균형이 곧 건강이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 사회는 그 조화와 균형을 잃어가고 있다.
현대인들의 가슴은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간다는 말이 있는데,
그만큼 삭막해서 생명의 싹이 움틀 여지가 없다는 소리다.
가슴은 존재의 핵심이고 중심이다. 가슴은 모든 것의 중심이다.
가슴 없이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다.
생명의 신비인 사랑도, 다정한 눈빛도, 정겨운 음성도 가슴에서 싹이 튼다.
가슴은 이렇듯 생명의 중심이다.
그 중심의 기능이 마비된 것을 우리는 죽음이라고 부른다.
오늘의 문명은 머리만을 믿고, 그 머리의 회전만을 과신한 나머지 가슴을 잃어 가고 있다.
중심에서 벗어나 크게 흔들리고 잇다. 가슴이 식어 버린 문명은 그 자체가 크게 병든 것이다.
비인간적인 이런 수렁에서 헤어나려면 모두가 저마다 따뜻한 가슴을 되찾는 길밖에 없다.
물질의 더미에 한눈 파느라고 식어 버린 가슴을 다시 따뜻하게 가꾸어 삶의 중심을 이루어야 한다.
따뜻한 가슴만이 우리를 사람의 자리로 되돌릴 수 있다.
따뜻한 가슴은 어디서 오는가.
따뜻한 가슴은 저절로 움트지 않는다.
이웃과의 정다운 관계를 통해서, 사물과의 조화로운 접촉을 통해서 가슴이 다뜻해진다.
-오두막 편지 / 법정] 그 산중에 무엇이 있는가 -
섬 백리향
꿀풀과(―科 Lamiaceae)에 속하는 낙엽관목. 키는 15㎝ 정도이다.
줄기는 덩굴성으로 이곳에서 많은 가지가 나온다.
잎은 마주나고 길이는 약 1㎝, 너비는 5㎜ 정도이다.
잎은 양쪽에 선점(腺點)이 있으며, 잎가장자리는 밋밋하다.
6~7월에 연분홍색의 꽃이 잎겨드랑이 줄기끝에 2~4송이씩 무리져 핀다.
꽃부리는 2갈래로 나누어지고 열매는 9월에 암갈색으로 익는다..
식물체에서 독특한 향기가 나는 토종 허브식물로 우울증, 피로회복, 빈혈 등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백리향에 꽃말은 용기입니다 .
백리향, 이름만 들어도 청량한 향기가 날아들 듯하다.
높은 산 바위에서 혹은 산자락을 덮으며 방석처럼 펼쳐지는 모습을 보며,
느껴지는 실제 향기는 느낌보다 더욱 독특하고 인상적이다.
작고 앙증스런 꽃송이들이 내어놓은 향기도 좋지만
잎을 비비면 그 끝에 묻어 나는 향기가 더욱 특별하다.
‘백리향’이란
이름이 꽃이 피어 그 향기가 백리까지 퍼져나간 다는 뜻이라기 보다는
향기가 발끝에 묻어 백리를 가도록 계속 이어진다는 뜻에서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산길을 걷다 백리향이 발아래 밟히고 그때 짓이겨져 묻은 향이 더욱 진해지고
그대로 발끝에 묻어 백리를 갈 만큼 오래오래 지속된다는 말이다
에림원 섬 백리향 꽃밭에서
섬백리향을 카메라에 담음며 향기에 에 취해서 ....
예림원 인공폭포
벌들도
백리향 향기에 몰려듭니다 .
섬백리향 전설 ~
어느 바다 어부가 바다에서 풍낭을 만나
어두운 바다 백리밖에서
백리향 꽃 향기를 따라
울릉도 항구를 찾아 무사히 왔다 하며 백리향이라 합니다
천연기념물 52호 지정
행복해 ~~
사랑 ~~
꿈 ~~
오래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 간다
"너는 네 새상 어디에 잇느냐?
너에게 주어진 몇몇 해가 지나고 몇몇 날이 지났는데
너는 네 세상 어디쯤에 와 있느냐?"
-오두막 편지 / 법정] 너는 네 세상 어디에 있는가 중에서 -
스프링쿨러에 참새
수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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