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날들을 위하여

나의 희망

따뜻한 하루 2005. 12. 21.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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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희망 /안도현
                   학교 관사 옆 공터가 심심하지 않게 
                   거기에다 호박을 심자 했더니 
                   선생님, 우리가 우리를 어떻게 심나요? 
                   깔깔대더니 
                   어느새 호미와 삽과 괭이가 모이고, 
                   비료가 한줌씩 오고, 
                   쇠똥거름도 한 리어카 달려왔지 
                   사실 이런 일이 생전 처음인 나는 
                   구덩이마다 호박씨 서너 개씩을 꼭꼭 심으며 
                   이것들이 땅속에서 부디 숨결을 열어주기를 
                   그리하여 이 세상하고 다시 관계를 맺어주기를 
                   얼마나 조마조마 기다렸는지 몰라 
                  떡잎이 삼삼오오 오종종 돋은 날 
                  나는 고것들이 햇볕의 끈을 부디 놓치지 않기를 
                  빌었지, 덩굴손을 가지게 되면 
                  자기 아닌 존재가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을 손 뻗어 툭, 건드려보는 재미로 살아가기를 
                  수업 없는 빈 시간에 둘러보고 물을 주며 
                  또 빌고는 했지 
                  사는 게 뭐 별거 있겠어 
                  자꾸 물을 주다보면 
                  호박꽃은 필 거야 
                  그러면 어느날 아침 한때 
                  나, 호박꽃 주위에서 붕붕거리는 한 마리 벌이 될지도 몰라 
                  세상 속으로 뚫린 귀가 있다면 
                  두두둥 둥둥둥 두둥두 둥둥두둥 
                  호박이 익어가는 소리도 들을 거야 
                  그래 그래, 삶의 뜨거운 날 다 지나간 뒤에 
                  우리 반 여학생들 궁뎅이 같은 놈이나 
                  드문드문 열렸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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