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관사 옆 공터가 심심하지 않게 거기에다 호박을 심자 했더니 선생님, 우리가 우리를 어떻게 심나요? 깔깔대더니 어느새 호미와 삽과 괭이가 모이고, 비료가 한줌씩 오고, 쇠똥거름도 한 리어카 달려왔지 사실 이런 일이 생전 처음인 나는 구덩이마다 호박씨 서너 개씩을 꼭꼭 심으며 이것들이 땅속에서 부디 숨결을 열어주기를 그리하여 이 세상하고 다시 관계를 맺어주기를 얼마나 조마조마 기다렸는지 몰라 떡잎이 삼삼오오 오종종 돋은 날 나는 고것들이 햇볕의 끈을 부디 놓치지 않기를 빌었지, 덩굴손을 가지게 되면 자기 아닌 존재가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을 손 뻗어 툭, 건드려보는 재미로 살아가기를 수업 없는 빈 시간에 둘러보고 물을 주며 또 빌고는 했지 사는 게 뭐 별거 있겠어 자꾸 물을 주다보면 호박꽃은 필 거야 그러면 어느날 아침 한때 나, 호박꽃 주위에서 붕붕거리는 한 마리 벌이 될지도 몰라 세상 속으로 뚫린 귀가 있다면 두두둥 둥둥둥 두둥두 둥둥두둥 호박이 익어가는 소리도 들을 거야 그래 그래, 삶의 뜨거운 날 다 지나간 뒤에 우리 반 여학생들 궁뎅이 같은 놈이나 드문드문 열렸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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