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영원히 군대

1979년

따뜻한 하루 2011. 4. 23. 21:45

1979년

 

79년 4월 FEBA에 내려오다

 

78년 9월 철원 백마고지 앞 소대막사에서 체력단련 배구경기후 3소대원들

 

최전방 소대에 전입가서 몇달후 차차 군생활에 적응되어가고 있었다 .

일몰후 전반야 근무자는 일몰부터 자정까지

후반야 근무자는 자정부터 동틀때까지 6시간 반씩 초병근무를 하였다 .

초병근무후 돌아와 오전 11시 반까지 취침을 하고 정오에  점심

점심후 일과라고 해봤자 진지 보수와 소대원 모두 모여 외각 초병 근무자 빼고

그땐 족구보다 배구를 많이 하였다

손바닥 만한 연병장에서 배구나 태권도 국기원 단증 따려고 태극 8장인가 을 가랑이가 찟어지도록 발길질를 하였고 

 저녁전 개인 장비 손질과 그날 내려온 좌표 따라 포 방열 저녁 먹고 군장 검열후 또 초병근무 매일이 다람쥐 챗바귀 도는 생활이였다 .

사진에 보이는 소대원 모두가 검게 그을린 것은

여름내 차량 대피호 만드느라 땡볕에 홀랑벗고 (거시기만 가리고 )

우리는  차랑 대피호지 , 각 대대 애들은 155마일 철책따라 전차 방벽공사 하느라 정말 죽도록 고생들 많았다 .

뭐 보는 민간인도 없는대 ... 우리소대원뿐

(잠깐 ! 덜 까만 사람은 백인 ! 일안한 농댕이꾼  몰래 그늘밑에서 낮잠만 잔사람 아니고 워낙 피부가 좋은사람 ㅎㅎㅎ )

넷이서 당가에 (손수 만든 들것) 에 뗏장 둘이가 억지로 들정도 크게 떠서 넷이서 들고옴

그 뗏장을 겹겹이 쌓아  (차량 대피호 ) 각지게 아주 멋있게 여름내 아주 잘 만들어 놓았는데 ....

그만 ~~~

폭우에  폭삭 ~~도루아미타불 ~~#@$55  차랑이 흙터미에 뭍이지 안은것만도

하느님 고맙습니다 , 할레루야 , 부처님 고맙습니다 ,나미아불타불 성불하십요 ~~

그리하야

또 다시 대피호 복구하느라 깜땡이 ,흑인 다 되고 아고 허리야  ~~

그때 진액 다 삐져 요즘 시원치 않은가 ?????

 

 

 

                79년 10월 중대 관망대 초소옆에서 철원출신동기와 함께

 

이사진만 보면 30년이 넘었지만 아주 되게 혼난일이 생각남니다                

이 곳 담 넘어 동네가 신망리옆  와초리라는 동네인데 이맘때 7~8월  담 넘어 밭에는 노지 오이와

옥수수가 무지 많이 탐스럼게 익어가고 있었죠

일요일이면 점심에 라면이 삶아 나오는데 주말 외출 외박에  남은 인원 얼마 없구 라면은 퉁퉁 불어 먹는중 마는중

거의 짬밥통행이였었죠

그렇때 담 치기해 ( 담이라고 해봐야 철조망도 없고  그저 흙으로 쌓아놓은 조그만 언덕 사진에 보이시죠  길이나 반들반들  )

오이 쓸쩍 몇개 따와 라면으로 즉석 냉면 해먹으면 그맛 끝내주었죠

라면 냉면 만드는법 ; 라면은 스프없이 삶아 건저 냉수에 씻어놓고  오이 채썰고 스프넣고 비비면 즉석 냉면

함 만들어 드셔 보시기 바람니다 .정말 맛있어요 ^^

 

      또 옥수수가 익어 갈때쯤 휴일날  면회 오는사람없어 외출은  못나가구

      고향에서 먹던 옥수수가 생각나 (요즘처럼 맛 좋은 대학찰 ,미백옥수수가 아니라  소먹는 사료용 )

요것두 담치기해 몰래 따다 쌂을 솥이 없으니 식용유 18리터짜리 깡통에다 넣고 ,영점 사격장 옆에 쓰래기장이 있는데

그곳에서 몰래  삶아 먹었죠 .

이때도 연기나니까 바짝 마른 싸리비 태워 주번사관  간부들한테 안들키게 ㅎㅎㅎ

몇번 잘해먹다 어느 일요일 그날도 다른날과 마찬가지로 담치기해서 옥수수를 쓸쩍하는데

그만 !

옥수수를 따면 옥수수 토새기 부러지는 소리가 딱 딱 나거든  그 소리를 들은 옥수수 목장 주인에게

꼼짝없이 생포되어  그간 따다 먹은 옥수수 너희들 짓이렸다

옥수수값 다 물어 내라며  집에 알리고 ,똥싸게(인사계) ,중대장에도 알리겠다고 으름짱을 놓은 바람에 영창 갈까 봐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달도록 빌고 또 빌어던 기억이 남니다 .

사료용 옥수수지만 그 땐 그 마져 맛 있던데요 ㅎㅎㅎㅎ

그때 아저씨 이제 8~9순이 다 되셨겠죠 

옥수수 오이 몰래따다 먹어 죄송합니다 아저씨  오래 오래 건강하시구요 .....

 

또 있는데 ...

참외 ,배 ,삼 밭에 인삼 ,요것도 쬐끔만 야간 장벽고  보초 근무 나가서 ......

중대원 모두가 야근 할때마다 어이구 몬살어

어느 소대원은 따볼백으로 한 가득 따와 잠자는 소대원들 깨워놓고  어서 먹어 먹어 졸려 죽겠는데....

그래도 눈 비비고 일어나 우기적 우기적 쩝 쩝 ㅎㅎㅎㅎ 

그날밤 포식 했다우 ...

전우애가 이런건가 ?????? ......

배밭 주인 아저씨께도 죄송합니다 ....

 

78년 9월 첫 휴가때

79년 10월 중대 연병장에서 철원 출신 동기 삼총사  

                 78년 9월 첫휴가때 초등학교 운동회날 막내 동생과 함께

               78년 첫휴가때 초등학교 운동회날 고향 친구와 함께

79년 10월 차량 진지에서 중대장 짚차

79년 10월 차량 진지에서 중대장 짚차 에서 동기와 함께

79년 5월 다락대 한탄강에서 7895전투지원중대 3소대 3분대원들과 함께

 

5월 중순경부터 6월 중순까지 한 달간 연천 다락대 사격장 보전포 시범훈련 나갔을때

한탄강에서 빨래하고 목욕하고 때빼고 광내고 한 컷했습니다 .

다락대 훈련장에서 ....

그때 다락대 훈련장에는 우리 4.2인치 박격포 소대외에 ,106mm무반동총 ,105mm곡사포,155mm 자주포 ,보병 전차 ,모든

화력과 장비가 다 와 있었죠 ,

우리도 하루 일과가 화력 시범 보일때 표적지 명중시키는게  주 임무니까 매일 그 표적지에 탄착점 숙달시키는게 일과였죠

영내에 있으면 모내기철이라 대민 지원하랴 ,교육 훈련하랴  똥오줌 못가리게 바쁘지만 우린 고지에서 마냥 눌루날라 이였죠

어느 우중충한 날밤

우리소대 고참 몇이 건너편에 숙영하던 105mm인가 155mm인가 숙영지에 몰래 잠입하여 겨눔대 ( 포병출신은 아시죠 ? 포병은 이 막대기 없으면  큰일남 )

몇개를 ( 포대경도 훔처와야 하는데 ㅋㅋㅋ) 쓸쩍해서 소대로 무사히 복귀해 아무일 없다는듯이

잠 잘자고  아침에  기상해 일석 점호중 바라본  건너편 포대에서는  CPS!  포대 난리가 났습니다요 .

비몽사몽 기상 나팔 소리에 기상해 일어나보니 목숨보다 중한 포 방열해놓은 기준점 겨눔대가 한개도 아니  수개가 없어졌으니

그 포대원들 모두 아침부터 얼차려에 줄 빠다에  퍽 ~~~퍽 ! 애구 ~~~~불쌍해 죽겠네 .....

건너다보는 우리들은 ㅋㅋㅋㅋ 좋아 죽겠죵 ~

 

겨눔대  잃어버린 그포대  우리한데 와서 혹시 못 봤수 ?  뭘요 ???

그래도 심중은 있는데 물증은 없고 ,......

그날 밤부터 우리는 그야말로 대간첩 작전보다도 더 어려운 임무를 수행하여야만 했습니다 .

일몰이 지기 무섭게 탄약수는 겨눔대를 신주  단지 모시듯 고이 모셔 텐트안 바닥에 깔고 자고 근무자는 ,적병 !

아니 건너편 포병대의 습격에 대비해 올배미 두눈은 100만촉광보다도 더 밝게  두귀는 토끼 귀보다 더 길게  쫑끗해가며

포는 안 훔처가겠지만 ,겨눔대와 포대경을 지키기 위해 이 한목숨 바쳣답니다 .

79년 5월 다락대 보전포 훈련 나와 겨눔대 잃어버린  포병 전우들아 미안해 그때 그짓 우리 4.2 ˝ 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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