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16일 태국 방콕 여행기
2009년2월 16일 오전 11시 친목회 회원 8 가족 16명은 많은 우여곡절끝에
해외 여행길에 올랐다 .
여행국은 태국
방콕, 파타야 4박6일
해마다 안사람들만 국내로 다녔었는데 .
꼭 남편들하고 해외여행 간다고 억척을 부리더니 ,
몇년간 모은 친목회비로 드디어 오늘 부부 동반 해외 여행길에 오른것이다 .
이렇게 8가족 16명이 함께 여행길에오른건 근 10여년 만이다
해마다 2월이면 부부동반으로 삼사일식 국내 방방곡곡을 다녔었는데
98년 제주도 여행을 마지막으로 오늘 이렇게
여행길에 오른것이다 .
한 두 집도 아니고 여럿이 함께 하기가 참으로 힘든가 보다 ,
아픈사람에 , 집안 대소사에
올해도 아픈사람이 두어집 있었지만
더이상 미루다간 영영 못갈것같아 드디어 설래는 가슴안고
여행길에 올랐다 .
특히 우리부부는 2월에 결혼하여 28주년 결혼기념 여행길이다 .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이제껏 외세의 지배를 한번도 받은 적이 없는 나라가 태국이다.
이것에 매력을 느껴 태국은 과연 어떤 외교전략을 구사함으로써 격변하는 시대마다 대처하여 왔는지
태국의 외교역사를 뒤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 중국같은 강대국들 사이에 끼어있는 반도적 위치에 놓인 우리나라의 지리적 환경과 일제 강점하에 지내온 울분의 역사를 떠올려 볼 때,
이번 여행에서 배울점은
지혜로운 외교정책으로 외세의 지배를 한 번도 받지 않은 태국의 외교정책과 풍습 문화 환경을 보고 배우는 것은 큰 의의가 있다.

공식명칭 : 타이왕국(Kingdom of Thailand)
인구 : 64,632,000
면적 : 513,120㎢
수도 : 방콕
정체·의회형태 : 입헌군주제, 양원제
국가원수/정부수반 : 국왕/총리
공식 언어 : 타이어
독립년월일 : 1350
화폐단위 : 타이바트(Thai baht/B) * 1바트 우리돈 40원 2009년 2월가
국가(國歌) : Prathet Thai ruam nua chat chua Thai("Thailand, cradle of Thais wherever they may be")
동남아시아 인도차이나 반도 서부 지역에 있는 국가.
남북으로 1,500km, 동서로 800km가량 뻗어 있다. 수도는 방콕이다. 북서쪽으로 미얀마, 북동쪽으로 라오스, 남동쪽으로 캄보디아와 타이 만, 남쪽으로 말레이시아, 남서쪽으로 안다만 해와 접해 있다. 면적 513,120㎢, 인구 64,632,000(2006 추계).
http://city.bangkok.go.th/th/index.php 방콕 사이트
http://enjoysubway.com/mem/share/index.php?cate=3&lng=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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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 가는길 ~

인천공항에서 출발하기전 , 8쌍에 부부들

우리가 타고갈 아시아나 oz741 여객기

제 2일 차 아침 호텔에서 바라본 방콕시내 전경
방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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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타이어: กรุงเทพ ฯ듣기 (도움말·정보) 끄룽텝, กรุงเทพมหานคร듣기 (도움말·정보) [kruŋtʰeːp mahaːnakʰon] 끄룽텝 마하나컨, 문화어: 방코크)은 타이의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이다. 타이 만으로 흘러드는 짜오프라야 강 동쪽, 북위 13°45′, 동경 100°31′에 자리잡고 있다.
방콕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으며 경제적으로 역동적인 도시 가운데 하나이다. 특히 고층 빌딩 건설이 아주 활발하다. 방콕은 세계에서 22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로, 약 816만522명을 기록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민들은 싱가포르와 홍콩과 맞먹을 지역 중심지로 성장하고 있다고 자랑하지만 고속 성장의 부작용으로 중대한 기반 시설 문제, 사회 문제를 겪고 있기도 하다. 세계 기상 기구는 방콕을 세계에서 가장 더운 도시라고 부른 바 있다. 방콕은 문화적 유산이 풍부한 세계적인 관광지이기도 하다.
방콕은 주변의 여섯 개의 주, 사뭇쁘라칸 주(สมุทรปราการ), 싸뭇싸컨 주(สมุทรสาคร), 차청사오 주(ฉะเชิงเทรา), 파툼타니 주(ปทุมธานี), 논타부리 주(นนทบุรี), 나콘파톰 주(นครปฐม)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명칭
방콕의 정식 이름은 กรุงเทพมหานคร อมรรัตนโกสินทร์ มหินทรายุธยามหาดิลก ภพนพรัตน์ ราชธานีบุรีรมย์ อุดมราชนิเวศน์ มหาสถาน อมรพิมาน อวตารสถิต สักกะทัตติยะ วิษณุกรรมประสิทธิ์(끄룽텝 마하나컨 아몬라따나꼬신 마힌타라 아윳타야 마하디록 폽 노파랏 랏차타니 부리롬 우돔랏차니웻 마하사탄 아몬 삐만 아와딴 사티 사까타띠야 윗사누깜 쁘라싯 듣기 (도움말·정보))으로, "천사의 도시, 위대한 도시, 영원한 보석의 도시, 인드라 신의 난공불락의 도시, 아홉 개의 고귀한 보석을 지닌 장대한 세계의 수도, 환생한 신이 다스리는 하늘 위의 땅의 집을 닮은 왕궁으로 가득한 기쁨의 도시, 인드라가 내리고 빗누카른이 세운 도시"라는 뜻이다. 학교에서 이 이름을 가르치지만, 지금은 쓰이지 않는 낱말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정확한 뜻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사니와산 초띠꾼(อัสนี-วสันต์ โชติกุล)이 이 이름을 외우기 쉽도록 지은 〈끄룽텝 마하나컨(กรุงเทพมหานคร)〉이라는 노래가 있다.
자연환경
타이는 지형학적으로 북부 산악지대와 중부 평원지대, 북동 고원지대, 남부 밀림지대 등 4개 지역으로 나누어진다. 북부 산악지대에는 평균고도가 1,200m 정도의 여러 산맥들이 세로로 나란히 뻗어 있으며 그 사이로 핑·왕·욤·난 강의 하곡이 가파른 골짜기를 이루고 있다. 열대우림이 무성하여 고급 목재가 많이 생산되고 있다. 타이에서 가장 높은
인타논 산(2,595m)이 산맥 북서쪽 끝에 위치한다. 타이 중심부를 이루는 중부 평원지대는 4지역 가운데 가장 넓은 지역으로 대부분
차오프라야 강 삼각주로 이루어져 있다. 기름지고 인구가 조밀한 평원지역에는 여러 개의 운하와 소규모 관개시설들이 집중되어 있으며 타이의 경제활동 중심지로 큰 몫을 한다. 북동부에는 고도가 낮은 사암지대인
코라트 고원이 있다. 모래질의 메마른 토양에 자리잡은 건조지대로 대부분 사바나형 목초와 관목으로 뒤덮여 있다. 말레이 반도 북반부를 차지하고 있는 남부 밀림지대는 완만한 산악지형에 속하는 곳으로 평지가 거의 없다. 타이의 광물 자원(주석) 대부분과 고무나무 재배지가 이 지역에 밀집해 있다. 차오프라야 강은 그 지류들과 함께 타이 경제에 아주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아열대몬순기후 지역에 속하며 여름(3∼4월)·우기(5∼10)·가을(11∼2월)의 뚜렷한 세 계절로 구분된다. 연평균기온은 25∼29℃이며, 연강우량은 코라트 고원의 900㎜에서 차오프라야 범람원의 1,016㎜, 말레이반도 서해안의 4,000㎜까지 다양한 분포를 보인다. 전체 국토면적의 약 1/4을 차지하는 삼림은 주로 단단한 목재와 수지가 생산되는 나무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나무·야자나무·반얀나무·등나무와 다양한 종류의 양치류도 찾아볼 수 있다. 야생동물로는 코끼리·긴팔원숭이·호랑이·표범·멧돼지·비단뱀·왕코브라·푸른바다거북·악어 등이 서식한다. 번창하는 견직산업 국가로서 양잠도 이루어진다. 타이에서 가장 중요한 광물자원은
주석으로 매장량이 세계 총매장량의 약 10%에 해당하며 천연 가스 또한 상당량 매장되어 있다.
타이족(샴족)과 라오족 등
타이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전체인구 가운데 거의 4/5를 차지한다
(→ 타이 제어). 타이족이 지배적인 종족이자 언어집단이며, 중국인·크메르인·말레이인도 상당수를 차지한다. 소수 원주민으로는 산악지대에 사는 카렌족, 입으로 부는 화살과 창으로 사냥을 해 살아가는 세망족, 삼각주 평원지대 원주민으로 여겨지는 라와족이 있다. 그외 이주민인 수에이족·인도인이 상당수 거주하며, 1980년대 중반까지 38만 명 가량이 유입된 미얀마·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 난민들이 있다. 국교인
불교가 널리 퍼져 있으며 이슬람교도·힌두교도·시크교도·그리스도교도가 소수 존재한다. 대부분의 원주민은 애니미즘적 경향이 강하다. 출생률과 사망률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낮아졌으나 아직까지 비교적 높은 편이다. 인구의 거의 1/5이 도시지역에 거주하며 차오프라야 삼각주, 특히
방콕에 집중되어 있다. 그밖에도 강가 또는 해안지역에 인구가 밀집되어 있으며, 주석 채광업과 조선업이 발달한 서부 해안에도 인구가 많다. 인구의 1/3 이상이 15세 이하이다.
타이 경제는 주로 서비스업·경공업·농업에 바탕을 둔 시장경제가 중심을 이룬다. 국민총생산(GNP)은 인구보다 훨씬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의 1/8을 차지하는 농업 부문에는 노동력의 절반 이상이 종사하고 있다. 소지주들이 전국 대부분의 농지를 지배하고 있다. 주요작물인 쌀에 대해서는 국내 부족사태를 막기 위해 높은 수출관세율이 부과된다. 중부 평원 주변의 고지에서는 옥수수가 널리 재배된다. 주요 환금작물로는 카사바·고무·사탕수수·바나나·파인애플·케나프삼(황마 대체용 섬유) 등이 꼽힌다.
소와 물소는 여러 해 동안 짐수레를 끄는 데 이용된 후 식육용으로 도살된다. 돼지·가금류의 사육은 점점 더 대규모화 전문화 되어가고 있다. 주요단백질원은 어류로 1960년 이후 트롤선(船)이 도입되면서 어획량이 크게 늘어났다. 삼림이 남벌되어왔기 때문에 원목 일부를 수입으로 보충하고 있다. 주요 주석 생산국인 타이의 광업은 주석의 생산과 수출이 중심을 이룬다. 정부에서는 타이 국민들에게 1980년 이후 개발된 해저 주석광에 집중적인 관심을 기울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상당한 양의 갈탄·철광석·망간도 채광되고 있으며, 앞바다에서 생산되는 천연 가스 소비가 늘어나 석유 수입이 감소하고 있다. 제조업은 GDP의 1/4을 차지하는 반면 노동력의 1/100,000을 고용하고 있다. 경공업이 주를 이루며 방콕 주변에 집중되어 있다. 대부분 소규모로 운영되고 있는 공장들은 국산 원료의 가공에 힘을 쏟고 있으며 주로 맥주·정제설탕·섬유·시멘트·화학제품·오토바이를 생산한다. 전력은 수입 및 국산 연료를 통해 얻어지며 1/10가량은 수력발전으로 충당된다. 타이는 1980년대, 그리고 1990년대 들어 계속 무역 적자를 겪어왔다. 주요 교역 상대국은 일본·미국·싱가포르·독일·네덜란드·영국으로 전기동력장치·기계·의류·직물·어류·어류가공품 등을 수출하고 기계, 차량, 광물 연료, 철, 철강, 화학제품 등을 수입한다.
타이는 1932년 이래 대체로 군부가 지배해온 의원내각제 형태의
입헌군주국가이다. 세습 왕이 국가 수반이자 군 총사령관이다. 입법권은 상원과 하원으로 이루어진 양원제 의회에 있다. 상원은 270명의 의원으로, 하원은 360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는데 임기 6년의 상원의원은 현직 총리의 추천으로 임명되며 4년 임기의 하원의원은 선거를 통해 직접 선출된다. 정부 수반은 총리이며, 1992년 개정헌법에 따라 하원의원 중에서 선출된다. 총리는 왕의 임명에 앞서 각료를 지명한다. 다당제 국가이지만 군부가 지배적인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사회복지제도를 통해 미약하나마 아동·가족·노령자·극빈자·재난 구호에 힘쓰고 있으며, 위생 상태 또한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양호한 편이다. 말라리아와 위장 및 호흡기 질환이 국가적으로 중요한 질병이다. 평균수명은 비교적 높은 편으로 약 66세에 이른다. 7∼15세의 청소년에게 무상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나 일부 도시지역은 학교가 부족한 형편이다. 교육은 6년제 초등학교, 5·6년제 중등학교와 대학교·사관학교·교사양성소 등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방송은 정부에서 통제하며 군부에서 대부분의 라디오 방송국과 여러 개의 텔레비전 방송국을 소유하고 있다.
타이의 예술은 건축·미술·음악·연극·문학·자기 및 도기 공예 분야에서 뛰어나다. 타이 건축양식은 보통 목재로 지은 불교 사원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종교적인 색채가 압도적인 타이 미술은 인도와 스리랑카에서 전해진 전통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보인다. 시는 전통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져왔으며 현대 문학에서는 현실주의 소설류가 인기를 얻고 있다(→
타이 문학).
고고학적 증거들에 따르면 이곳에는 지난 2만 년 동안 거의 계속해서 사람이 거주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타이어를 쓰는 민족이 10세기 무렵 중국에서 남쪽과 서쪽으로 이주해왔다. 13세기에 들어와 크메르 왕국에 대한 반란이 성공한 후 1220년경 세워진
수코타이 왕국과 하리푼자야의 몬 왕국을 물리친 후 1296년경 일어난
치앙마이 왕국 등 2개의 타이 민족국가가 세워졌다. 1350년 수코타이 왕국을 무너뜨리고 세워진
아유타야 왕국은 15세기초에 수코타이 지역을 완전흡수하고 무너져가던 크메르 왕국을 폐허로 만들었다. 1569년 아유타야 왕국의 가장 강력한 적이었던
미얀마인들이 아유타야군을 물리치고 수도를 점령했으며 15년 동안 아유타야 왕국을 지배했다. 1767년 미얀마인들이 다시 한번 타이 수도를 점령한 후 아유타야 왕조의 지배는 막을 내렸다. 1782년 차오 프라야 차크리(
라마 1세)가 이끄는
차크리 왕조가 권력을 잡게 되었다. 새 왕조는 초기에 수도를 강 건너 방콕으로 옮기고
라마 3세 때(1824∼51) 남쪽으로는 말레이 반도를 따라서, 북쪽으로는 라오스까지, 남동쪽으로는 캄보디아까지 영토를 넓혔다. 19세기 들어 타이(시암) 군주들이 유럽 국가들에 이권을 주고 그들과 정치적인 관계를 맺게 됨에 따라 타이에 대한 서구의 영향력은 점점 커져갔다. 시암은 1867년 캄보디아에 관한 권리를
프랑스에 양도했으며 출랄롱코른 왕 시대(1886∼1910)에는 서구식 내정개혁 정책을 폈다. 19세기말과 20세기초에는 라오스와 캄보디아 지방에 있던 속국을 프랑스에 양도했으며, 1917년 연합국 편에 가담해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그후
프라자디포크 왕(1925∼35 재위) 시대에 쿠데타가 일어나 절대군주제가 무너지고 입헌군주제 정부가 세워졌으며 1939년에는 국가의 공식 명칭을 시암에서 타이로 바꾸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는 마지못해 일본의 동맹국으로 참전했다. 타이의 안보가 인도차이나 전쟁과 베트남 전쟁, 전후 베트남군의 캄보디아 침공으로 잇달아 위협을 받게 되자 1932년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군부의 지배가 시작되어 1950년대와 그 이후까지 계속되고 있다. 쿠데타가 일어난 1932년부터 지금까지 군주의 역할은 제한되고 군부가 지배하거나 군부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정부가 잇달아 들어서고 있다.
1950년 11월 6·25전쟁에 참전한 혈맹국으로 한국과 1958년 10월 1일 외교관계를 수립한 후에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입장을 적극 지지해왔다. 양국간에는 무역협정(1961. 9)·항공협정(1967. 7)·이중과세방지협정(1974. 8)·일반여권사증면제협정(1981. 11)·과학기술협력협정(1984. 4) 등이 체결되어 있다. 북한과는 1975년 5월 8일 수교하고 무역협정(1978. 12)·체신우편협정(1982. 2)을 체결했다.
타이는 한국 기업이 해외건설산업 부문에서 처음 진출한 국가로, 1966∼68년 현대건설주식회사가 파타니-나라티와트간 고속도로를 시공했다. 교역 규모는 1996년 대한 수출액 12억 1,877만 달러, 대한 수입액 26억 6,4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 외환은행, 현대그룹, 삼성그룹, 대우그룹 등 13개 업체가 진출해 있으며 1997년 현재 교민과 체류자는 각각 62명, 7,839명으로 집계되었다.
출처: 브리태니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