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이 경쟁력이다.
- 인정주의 벗어나기
'선거를 통해 아무리 능력 있는 대통령을 뽑아도 임기 말에는 똑같은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다.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청와대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뇌물 스캔들이 반복될 것이고, 인정주의가 정부 조직 안에 건재하는한 청탁과 관련된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는 되풀이 될 것이다.' 대선 후보들의 권력형 비리에 대한 일갈(一喝)이었다.
그들의 단골 공약은 청와대를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 대통령 집무실을 옮긴다는 것이었다. 청와대의 권한을 축소하고 실무형 대통령을 지향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문제의 해결은 시스템이다. 시스템이 철저하게 지켜지는 조직은 언제나 승리한다. 인정주의가 개입될 여지를 완전히 봉쇄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대통령 임기 말의 우(愚)를 범하지 않는 길이다.
손자는 조직과 시스템에 관심이 많은 인물이었다. '군대를 잘 운용하는 장군은 리더십(道)을 잘 수양하고 시스템(法)을 합리적으로 운영한다.(善用兵者, 修道而保法) 그러므로 승패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다.(故能爲勝敗之政)'
손자의 이 명제 속에서 리더십(道)과 시스템(法)을 동시에 강조하고 있다. 시스템에 의해서 리더십은 강해지고, 능력있는 리더십은 시스템을 바꾼다. 이 두 가지는 조직의 파워(勢)를 높이는 양륜(兩輪)이다. 손자가 활동하던 오(吳)나라는 황하 유역의 전통있는 나라들과는 달랐다. 명분과 전통을 중요시 여기던 황하 문명국은 전차전과 귀족(士)중심의 부대편성을 통하여 전쟁을 하였다. 따라서 전차를 기동하고 부대를 지휘하는 귀족의 역할이 일반 병사들보다 상대적으로 강했다. 결국 시스템보다는 지도자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조직이었다. 그러나 오나라는 보병 중심의 대규모 부대 편성을 중심으로 전쟁하였다. 이로써 오나라 군대는 전차전의 한계를 벗어나 장거리 원정이 가능해 졌다. 이제 임무에 따라 대규모 보병들을 조직하는 분수론(分數論)과 그들을 의사소통 시키는 형명론(形名論)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전술로 부각되게 되었다.
-월관(越官)한 자의 죽음
손자는 이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운영하기 위하여 시스템(法)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적과 나를 비교하는 지피지기 분석법의 4번째로 '상대방과 나의 조직 중에 어떤 조직이 시스템과 군령이 잘 시행되는가?(法令孰行)'를 들고 있다. 인정(人情)과 연(緣)에 의한 차별적 법령의 적용은 조직의 평균 힘을 떨어뜨린다. 자신이 맡은 임무를 벗어나 다른 임무에 기웃거리는 반(反) 시스템적인 조직원의 행동은 상응하는 벌로 징계해야 한다. 일명 자신의 임무를 벗어나는 월관(越官)의 피해는 조직의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원인이다. 이것이 손자병법이 이 시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손자보다 늦은 시대의 법가(法家) 지식인 한비(韓非)는 시스템론자였다. 그의 저서 《한비자(韓非子)》에서는 조직의 시스템을 파괴하는 월관의 피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옛날 한(韓)나라에 소후(昭侯)라는 임금이 있었다. 어느 날 술에 취해 잠이 들게 되었는데 그 옆에서 시중을 들던 전관(典冠 : 임금의 모자를 담당하는 관리)이 술에 취하여 옷도 제대로 안 갖추고 잠이 든 임금을 보게 되었다. 이 관리는 자신이 모시는 임금이 추위에 몸이 상할까 걱정이 되어 옷을 임금에게 덮어주었다. 왕이 술에서 깨어 일어나자 자신이 옷을 덮고 자고 있음을 기쁘게 생각하여 좌우 신하들에게 누가 이 옷을 덮어 주었냐고 물었다. 이에 좌우의 신하들은 전관이 국왕께서 추울까 염려하여 덮었다고 보고하였다. 이 말을 들은 '소후'는 잠시 생각하고는 전관과 전의(典衣 : 임금의 옷을 맡은 관리)를 모두 불러오라고 하였다. 전의는 자신의 책무를 저버렸다고 두려움에 떨었고 전관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하여 기쁜 마음으로 소후에게 나아갔다. 그러나 뜻밖에도 소후는 전의와 전관 모두를 벌주라고 명령하였다. 모두들 이상하게 생각하였는데 임금의 논리는 이러하였다. 전의는 임금의 옷을 맡아 담당하는 관리로써 자신의 임무를 소홀히 하였기 때문에 당연히 벌을 준 것이었고, 전관은 자신의 임무를 벗어나서 월권하였기 때문에 벌을 준 것이었다. 임금 자신이 추위를 싫어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맡은 임무를 저버리고 다른 일에 간섭하는 폐해는 그 추위보다 더 크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법가의 대표자인 한비는 이 이야기를 마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현명한 지도자가 자신의 신하들을 다스릴 때는 신하가 자신의 임무를 벗어나 다른 사람의 임무로 공을 세우게 하지 않는다. 또한 어떤 것이든 신하가 군주에게 한 번 말했으면 그 말을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의 임무를 벗어나서 월관(越官)하면 벌을 받아 죽임을 당할 것이며, 말한 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벌을 받아 죽임을 당할 것이다. 이렇게 모든 신하들이 자신의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고 자신들이 말한 것을 실천에 옮긴다면, 신하들이 붕당(朋黨)을 지어 서로 편싸움을 하지 않을 것이다.'
-실세라고 자만한다면 장가(莊賈)가 따로 있을까.
청와대 청소 담당이 청소는 안하고 다른 일에 끼어 들어 한 몫 챙기는 것이 가능한 나라다. 청와대 비서와 대통령 아들이 이권에 개입하는 것은 이제 정례화시켜 법이라도 만들어 국회를 통과시켜야 할 것 같다. 월관(越官)이 가능한 나라, 시스템이 무시되는 조직은 결국 무너지고 만다. 당장은 안 무너져도 오래가지 못한다. 권력기관의 총애를 받는 사람이라도 과감하게 베어낼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 나라가 산다. 제(齊)나라 경공(景公) 때의 일이다. 진(晋)나라와 연(燕)나라가 침략해 오자 국왕은 사마양저(司馬穰?)를 대장군으로 임명하였다. 그리고 그가 총애하는 신하 장가(莊賈)를 감군(監軍)으로 임명하였다. 감군은 왕을 대신하여 군대를 감찰하는 직책이었다. 직책은 대장군인 양저 보다 낮지만 국왕을 대신하는 실세중에 실세였다. 실세라면 자신을 더욱 낮추는 것이 몸을 보존하는 길이건만 장가는 그 이치를 깨닫지 못했다. 양저는 장가와 군문(軍門)에서 출정을 위하여 만나기로 약속하였다. 그러나 장가는 실세 티를 내며 약속한 시간을 훨씬 지나서 저녁때나 되어서야 나타났다. 대장군 양저는 장가를 꾸짖고 목을 베어버렸다. 실세를 다치게 하면 해(害)가 될 것이라는 부장(副將)들의 만류도 뿌리치고 실세에게 칼을 댄 것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외쳤다. '군주의 명령도 때로는 안 들을 수도 있는 것(君命有所不受)' 이다.
아무리 사장이라도 조직과 시스템을 뒤로 한 채 마음대로 횡행(橫行)한다면 그 회사가 살아남을 리가 없다. 조직은 살아 있는 유기체며 시스템을 먹고산다. 때로는 조직의 시스템을 위하여 보스의 명령을 거부할 수도 있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 손자가 살던 시대의 고민은 '변화의 시대에 누가 먼저 적응할 것인가'였다. 적응이 빠른 만큼 국가 생존능력이 높아진다는 것은 지도자(諸侯)들도 알고 있었다. 문제는 '누가 먼저 고대적 사유에서 벗어나는가'였다. 그 중 가장 힘든 것이 인정주의에서 벗어나는 일이었다. 귀족들은 자신들의 권한을 포기하려고 하지 않았다. 자신들은 특권층으로 특별히 대접받기를 원했다. 이들의 개혁에 대한 저항은 거세었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갖추어도 이들은 구속되기를 거부하였고 그들만의 나라를 유지하려고 하였다. 결국 그들의 나라는 차례로 멸망하였으며 그들의 특권도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새로운 시스템으로 정비한 진(秦)나라만이 살아남았다. 진시황제의 강력한 리더십에 시스템을 숭상하는 관료들이 모여들었으며 그들의 합리성은 진나라를 마지막 승자의 나라로 만들었다.
최고(Super)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조직의 발전을 위하여 자신의 팔을 벨 줄 아는 자만이 최고가 될 자격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