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 지명 및 유래

( 전설) 부처님 이마의 도끼<심원사 >

따뜻한 하루 2007. 5. 28. 23:02

2010년 1월2일 심원사 설경

심원사 앞에 실 개천이 흐르는데 개천 북쪽 심원사는 철원 동송읍 남쪽은 경기 포천 관인면이며 우리마을은 관인면

하루에도 몇 번씩 강원도와 경기도를 오간다

 

 

 

( 전설 1 ) 부처님 이마의 도끼<심원사 >

 

 

보개산 심원사라는 절에 묘선(妙善)이라는 젊은 스님이 있었다.
강원(講院)공부를 마친지 얼마 안되는 스님은 매사에 의욕적이었다.
어느날
노스님을 모시고 산책을 하던 스님은 노스님께 말했다.
"스님"
아무래도 절이 너무 낡아 보수를 해야 되겠습니다."
알고 있다 ,그러나 살림이 이렇게 어려워서야 어디 엄두를 내겠느냐?
"스님 , 오늘 부터 제가 백일 기도 을 드려 불사를 하겠습니다."
묘선 스님은 그날로 백일 기도 에 들어 갔다.
젊은 스님에 기도는 간곡했다 ,백일 기도를 ,회양 하는날 밤,

"묘선아 네 기도가 그토록 간절하고 불심이 강하니 반드시 시주가 나타나 절 중창을 이루게 될것이다.
내일 아침 일찍 화주를 구하러 나가도록해라.
맨 처움 만나는 사람이 심원사 불사의 시주가 될것이다."
꿈에 나타난 부처님은 이렇게 일러 주셨다.
잠에서 깬묘선은 거뜬한 마음으로 길떠날 채비를 차리고 노스님께
인사을 드렸다.

"소승 ,화주 길에 오르겠습니다."
"오냐 잘 다녀 오너라."
이렇게 이별을 한 묘선 스님이 막 산문밖을 나서는데,웬 나무꾼 하나가
아침 일찍부터 나무을 하고 있었다.
그냥 지나 치려다 꿈 생각을한 묘선은 나무꾼을 자세히 보았다.
아랫마을 사는 머슴 박씨였다.
묘선 스님은 마음속으로 머슴 박씨가 우리절 중창불사의 시주가 될수
없을 텐데 .......
그냥 지나 칠까 ?"
묘선 스님은 잠시 망설였다..
아냐 부처님이 일러 주신 말씀인데........
묘선 스님은 박씨앞으로 다가 갔다.
"일찍 나오셨습니다".
"아이구 심원사 스님이시군요 ,어디 먼데 가십니까?
묘선 스님은 일손을 멈추고 공손이 인사하는 박씨에게 간 밤 꿈 이야기를 들려 주며 시주가 되겠느냐고 물어 보았다.
박씨는 한동안 묵묵히 생각에 잠겼다.
" 50평생 못간 장가 이제 가서 뭘하나 ,차라리 그동안 머슴 살이로 모으 재산을 절을 짓는데 보시하고 부처님께 공덕이나 지어야지,"
마음을 결정한 박씨는 기꺼운 마음으로 스님께 대답했다.
"스님께서 제게 시주가 되라는 되는 큰 뜻이 있을 것입니다.
스님 말씀에 따라 ,40년간 모은 저의재산을 불사 기금으로 시주하겠습니다.

"참으로 고맙소 ,이 인연 공덕으로 다음생에 좋은 인연 받을 겁니다."
박씨의 시주로 심원사 불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머슴 박씨가 시주을 한 그날 부터 시름 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자리에 몸져 눕고 말았다 .
그러나 ,돈을 모두 절에 시주한 박씨는 약도 쓸수 가 없었다 ,
주인 집에서는 머슴이 일도 못하고 눕게 되자 .공밥을 먹일수 없다고
박씨을 절로 보냈다.
절에서는 박씨을 위해 극진히 간병하면서 정성껏 기도을 올렷으나
차도가 없었다 .
날이 갈수록 병은 악화되고 ,끝내 박씨는 죽고 말았다.

마을에서는 묘선스님이 순진한 머슴 박씨을 속여 결국 죽게 했다고 이웃 동내까지 소문이 자자했다.
묘선 스님은 더이상 심원사에 머물수가 없었다 ,
절을 떠나 기로 결심한 스님은 새벽 예불을 올리려 법당에 들어갔다.
희미한 촛불속에 부처님을 바라보는 묘선스님의 눈에는 원망이 가득했다.
가피는 커녕 ,시주자을 죽게한 부처님 " 이란 생각을 같게된 묘선스님은 자기도 모르게 헛간으로 발길을 돌렷다.

스님의 손에는 자기도 모르게 어느 새 도끼가 들려 있었다.
스님은 법당으로 다시들어가 부처님에 이마 를 도끼로 내려치고 황망히
절을 빠져 나갔다.
그뒤 전국을 만행하는 스님의 발걸음은 늘 무겁기만 했다.
심원사 부처님 이마에 박힌 도끼가 빠지지 않는다는 소문이 전국에 퍼져 있었다.
그렇게 30년이 지난 어느날.

묘선 스님은 심원사 부처님께 용서을 빌고 자신이 도끼을 뽐고 싶은 생각이 들어 심원사로 갔다.
절은 30년전 불사가 중단된 그대로 였고 ,부처님 이마엔 도끼가 있었다.

묘선 스님은 참회하는 마음에 가슴이 아팠다.


마침 그무렵 ,새로 부임한 철원 부사는 돈독한 불자로써 심원사 부처님 이마에 박힌 도끼를 뽑�다고 절에 와 있었다.
법당에 들어선 사또는 삼배을 올린후 부처님 이마에 도끼를 뽑았다 .
도끼는 쉽게 빠졌다.
그 도끼를 들려다 본 사또는 의야한 표정을 지었다.
"화주시주상봉(化主施主相逢)"
도끼에는 이렇게 여섯글자가 새겨 있었다.
이 모습을 법당 문밖에서 보고 있던 묘선 스님은 그때 비로서 부처님이
머슴 박씨을 죽게한 이유을 알았다.
스님은 사또 앞으로 나갔다.

"소승이 바로 30년 전 이 도끼로 부처님의 이마을 찍은 사람입니다.
사또님의 전생은 이 절을 시주하신 머슴임에 틀림없습니다.
당시 시주을 구한 시주승은 바로 저이지요.
화주승과 시주가 인연이 있어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된 것입니다.
"화주시주상봉"이란 바로 오늘의 인연을 부처님께서 미리 게시하신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묘선 스님의 설명을 들은 사또는 이해가 가는듯 고개을 끄덕이더니
순간 일어나 스님에게 삼배을 올렷다.
"스님 이제 멀리 떠나지 마십시요 .부처님의 뜻으로 인연 �어 스님과 제가 만났으니 심원사 불사을 완성해야 하지 않습니까?
필요한 돈은 제가 시주하겠습니다."
심원사 중창불사는 30년만에 다시 시작되었다.
묘선스님은 심원사을 중창 후 그 절에 오래 머물면서 큰 스님이되어
많은 신도을 교화했다............

<심원사 에 전설 입니다>

 ( 전설 2 )

고려시대 제7대 왕인목종때 의 일이다 심원사에서는

대종 불사를 하게되어 스님들이 각처를 돌련서  시주를 받으러다녔다

그러자 각 마을의 부인네들은 쌀과 돈 뿐만이 아니라 주발, 대접, 젓가락까지도 내기도하였다.
심원사 마을 아래에 어려서 열병을 얻어 장님과 앉은뱅이가 된 이덕기(李德基)와 박춘식(朴春植)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항상 한 자리에 모이면 신세 한탄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위안하고 다짐했다. 그로부터 남을 괴롭히는 일은 되도록 하지 않고,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되어 갔다. 장님인 이덕기가 앉은뱅이 박춘식을 업고 다니면서 밥을 얻어 먹었다. 한 사람은 눈이 되어 주고, 다른 한 사람은 다리가 되어 주면서 살았던 것이다.
어느 날 두 사람은 개울가를 지나가는데 물속에 빛나는 것이 있어 주워보니 금덩어리였다. 두 사람은 서로 가지려고 했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말하기를, “우리가 이 꼴이 되어 금덩어리를 가지면 무엇을 하겠는가?”하면서 금덩어리를 원래의 자리에 던져 버렸다. 그런데 한참 동안 걷다가 길가에서 소금장수를 만났다. 두 사람은 그 장사꾼에게 말했다.
“저기 가면 금덩어리가 있으니 그것을 가져 가시오.”
소금장수는 얼씨구나 하고 그곳을 빠른 걸음으로 가보니 금덩어리는 없고 큰 구렁이만 있었다. 소금장수는 속으로 생각하기를 ‘그 병신들이 나를 구렁이에게 죽게 하려고 하였구나’하였다. 그래서 그 소금장수는 구렁이를 죽이고, 다시 뒤쫓아와서는 멱살을 잡고 두 사람을 마구 때렸다. 한참 맞고 난 두 사람은 억울해서 원래의 그 자리에 와 보니 아까처럼 금덩어리가 두동강 난 채로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 두 사람은 그를 하나씩 나누어 갖게 되었다.
마침 그때 두 사람은 심원사 대종불사(大鐘佛事)를 하기 위해 마을에 내려온 화주스님인 묘선스님을 만났다. 권선문을 든 화주스님이 “대종불사에 시주를 하면 부처님의 가피로 재앙이 소멸되고, 현생에서 복을 받을 것입니다.”는 말을 하였다. 이 말을 들은 그들은 부처님께 시주하여 복이나 짓자고 약속하면서, 화주가 되기로 약속을 하였다. 이에 그들이 갖고 있던 금덩어리를 스님에게 건네 주었다.
그 이후 3년간 그들은 서로의 눈과 다리가 되어 열심히 살았다. 마침내 대종불사의 타종식 날이 되었다. 그들이 시주한 금덩어리를 팔아서 대종불사는 성사되었으며, 마침내 대종 준공식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두 사람은 소식을 듣고 평지도 아닌 태산준령을 넘어 보개산 심원사로 찾아가기로 했다. 장님인 이덕기가 앉은뱅이 박춘식을 업고 고개를 넘기 시작했다.
그들이 고개의 정상에 오른 직후, 심원사 대종의 첫 타종의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왔다. 그 순간 앉은뱅이 박춘식은 오색구름을 타고 밝은 구슬을 손에 지닌 지장보살님께서 하늘에서 심원사 쪽으로 내려오는 방광(放光)의 모습을 보았다. 앉은뱅이는 “지장보살님이 보이신다.”고 소리치며 장님의 등에서 뛰어 내렸다. 그러자 두 다리가 쭉 펴지는 것이었다. 그 소리를 들은 이덕기 또한 “어디! 어디!” 하고 소리치며 눈을 비비자 앞이 보였다. 그들은 산마루 위에서 오색구름에 쌓여 큰 빛을 발하고 있는 지장보살님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며 끊임없이 절을 하였다. 그들은 그 즉시로 심원사로 내려가 부처님께 수없이 절을 하고 서로 붙들면서 환희의 눈물을 흘렸다. 마침내 지장보살님의 가피를 입은 것이었다.
그들이 지장보살님을 본 고개를 견불령(見佛嶺), 그들이 살았던 마을은 부처님의 큰 광명이 머무르는 동네라 하여 대광리(大光里)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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