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
昭君怨(소군원)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하니
오랑캐 땅에 꽃과 풀이 없으니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을
봄이와도 봄같지 않더라
自然衣帶緩(자연의대완)하니
자연히 옷 띠가 느슨해지니
非是爲腰身(비시위요신)을
이는 허리 몸매를 위하였음이 아니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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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 11대 황제 원제 때의 일이다. 원제는 유교를 좋아하여 무제 때부터 국교로 지정된 유교를 그 뿌리가 내리도록 한 임금이었다. 그는 많은 유생들을 등용하여 이상적 유교정치를 꿈꾸었으나 현실은 매년 흉년이 들고 기근에 허덕이는 백성들이 많아지고 국력은 약해져만 갔다. 북방 흉노족에게도 전쟁을 막기 위해 화친 정책을 취할 수밖에 없었으니, 자신의 후궁을 흉노의 아내로 보내야할 정도였다.
이때 왕소군이 후궁 중에 선발되었는데 그 선발된 배경이 이렇다.
원제는 화공에게 명하여 모든 후궁들의 화상을 그려 올리도록 하여 그 화상을 보고 흉노로 시집갈 여인을 고르기로 하였다. 물론 덜 예쁜 후궁을 보내는 것이 좋으니까...
용모에 자신이 없는 후궁들은 앞다투어 화공에게 뇌물을 주고 자신의 화상을 아름답게 그려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용모나 그밖의 모든 면에서 자신에 차 있던 왕소군은 한푼의 뇌물도 주지 않았다. 심사 결과는 왕소군으로 발탁되었다. 나중에 왕소군을 만나본 원제는 그녀의 뛰어난 용모에 놀랐으나, 일단 결정된 일을 돌이킬 수는 없는 일. 왕소군은 눈물을 흘리며 정든 고국을 떠나 흉노로 향해야 했고 뜻밖에 절세의 미인을 얻은 흉노의 선우는 뛸 듯이 기뻐하였다. 결국의 사건의 전말이 황제에게까지 알려져 뇌물을 받은 화공은 임금을 속인 죄로 처형되었다.
왕소군의 자신의 슬픈 사연을 시에 담아 이렇게 노래했다고 한다.
오랑캐 땅에는 화초도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더라.(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